골프선수의 스폰서십

삼성의 성공 현대의 실패

박세리의 미국 진출 초창기 LPGA투어에서 박세리와 함께 가장 많이 거명된 선수는 동갑내기인 이주은이라는 선수였다.

국내언론에서 이주은이라는 이름이 오르내린것 박세리가 공등학교 3학년생으로 국내 여자 골프 무대를 휩쓸던 1995년 부터였다.

이민 2세로 당시 캘리포니아 주 서니힐스 고교 3학년생이던 이주은은 그해 미국 주어어 대회 우승 1회, 준우승2회의 성적을 올려 미국골프협회(USGA)주최로 뉴저지 주에서 열린 US여자 아마추어퍼블릭링크스 챔피언십에 출전 130여명의 성인 선수들과 겨뤄 8강까지 진출함으로써 주목 받기 시작했다.

이주은 이라는 이름이 다시 국내 언론에 거론된 건 1997년 초 였다  현대자동차와 3년간 5억원대의 스폰서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1995년말 삼성이 박세리와 계약을 체결한 것에 맞먹는 대형 계약이었다.

1996년말  박세리오 같이 치른  LPGA최종 퀄리파잉스쿨에서 1위를 달리다 룰 위반으로 풀시드를 받지 못한채 조건부 시드로 LPGA 투어에 진출할 계획이던 이주은과의 대형계약은 뜻밖의 사건 이었다.

삼성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의 이미지 상승이 필요했던 현대자동차로서는 삼성의 박세리와 견줄 만한 스타로 이주은을 꼽은 것이다.

당시로서는 국내 어느 선수도 갖고 있지못한 유럽여자프로골프 투어 카드를 이주은이 갖고 있었다는 것과 미국에서 보낸 아마시절 24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경력도 계약성사에 큰 몫을 했다.

박세리와 같은 루키로서 1998년에 LPGA에 데뷔한 이주은은  초반만해도 꽤 괜찮은 성적을 유지했다. 초반 신인 랭킹에서 박세리와 함께 1,2위를 독차지하며 순항한 이주은은 특히 평균퍼팅에서  한때 1위를 달리기도 하는등 안정된 플레이를 펼쳤다.

하지만 박세리의 성공과 달리이주은은 이후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며 큰 주목을 받지 못한채 첫해를 마쳤고, 이듬해 부터는 2부 투어를 전전하다 결국 현대자동차와의 계약이 만료된 2000년초 국내로 돌아와 버리고 만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때는 “톱 10″에 한 번도 들지 못했고 귀국한 이후 국내 무대에서도 우승한번 못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로서는 첫해부터 메이저2승을 포함해 4승을 거두며 “골프여왕”으로 우뚝선 삼성의 박세리가 두고두고 부러웠을 만하다.  이후 많은 기업들이 국내에서 활동하거나 미국으로 진출하는 골프선수들과 스폰서 계약을 통해 골프 마케팅을 펼치고 있지만, 현대 만큼은 다시는 골프 선수와의 인연을 맺지않고 있다.

 

“골프향상에 머리의 좋고 나쁨은 관계없다, 솔직하고 열심인 것이 첫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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