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불가능한 인생 그 자체, ‘너클볼’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 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야구 경기 중 벌어지는 수많은 플레이, 그리고 선수들의 사연에 인생의 희로애락이 그대로 녹아 있다는 말이다. 또한 매일 온갖 상황이 기록과 뒤섞이는 야구의 묘미를 압축한 문구이기도 하다.
<너클볼의 출현>
너클볼이라는 구종 자체가 갖는 특별함은 물론 너클볼 투수가 굳이 그 공을 던지게 된 사연까지 곱씹을수록 인생의 희로애락이 제대로 응축된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너클볼의 사전적 설명은 “손가락 끝이나 손톱, 관절 등으로 공을 찍어 누른 채 던지는 구종” 이다
가장 큰 특징은 회전이 거의 없는 상태로 날아간다는 것이다. 시속 160킬로미터를 넘나드는 강속구와 현란한 궤적의 변화구 모두 젖 먹던 힘을 쥐어짜 공을 최대한 강하게 회전시켜 만드는데 너클볼은 정반대이다. 회전을 없애는 것이 핵심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시속 93마일(150킬로미터) 직구의 분당 회전수는 보통 2300회 정도인 반면 너클볼의 분당 회전수는 150회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투수의 손을 떠난 너클볼은 물리적으로 한 바퀴 반 정도 돌고 포수의 미트에 꽂히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한다.
회전수를 조금이라도 높이기위해 과학적인 훈련법을 동원하는 현대 야구의 흐름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공인 셈이다. 회전없는 공은 날아가는 동안 황당할 만큼 이리저리 흔들린다.
솔기가 있는 쪽과 없는 쪽의 기류가 달라지면서 미세한 공기의 흐름에도 쉽게 휘둘린다. 날아가는 방식도 그때그때 제각각이다. “춤추고 솟아 오르고, 때론 날개짓에 비틀거리다 떨어진다.
회전없이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날아간다.
너클볼을 시각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장면이 축구에도 존재한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주니뉴 페르남부카노의 전매특허로 잘 알려진 무회전 프리킥이 정확히 같은 원리로 비행한다. 그래서 무회전 프리킥을 너클 프리킥이라고도 부른다.
“타격은 타이밍, 투구는 타이밍을 빼앗는 것” 이라는 대투수 워런 스판의 명언만 생각하면 너클볼은 타자의 리듬을 깨는 색다른 시도일 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너클볼은 타자의 리듬만 깨는 것이 아니라 포수가 공을 받는 방식마저 무너 뜨린다. 너클볼에 당하는 포수와 무회전 프리킥에 넋이 나간 골키퍼의 모습도 꽤나 비슷하다.
그래서 너클볼 투수에게 전담 포수는 필수 적이다
최근에 활약한 너클볼 투수 R.A디키에게는 전담 포수 조시 톨리가 있었다. 뉴욕메츠에서 뛰던 디키가 2012년 말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되는 과정에서 조시 톨리도 패키지처럼 따라간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타자가 치기 힘들고 포수가 잡기도 힘든 너클볼,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잘 던지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일단 일반적인 투수는 너클볼을 삼을 이유가 없다. 굳이 비틀거리는 공을 던져 불확실성에 기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다수 너클볼 투수는 스스로 자랑스럽게 너클볼을 던지게 된 것이 아니다.
팀 웨이크필드는 피추버그 파이리츠 입단 때만해도 타자였는데 마이너리그 성적이 형편 없었다. 어느날 소속팀 감독이 웨이크필드가 연습 도중 무심코 던진 너클볼에 주목했고, 아예 너클볼 투수가 되는 것이 어떠냐는 권유를 하게 되었다.
각종 기록이 형편없었던 웨이크필드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얘기인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현실이 녹록하지 않았던 웨이크필드 입장에서는 무엇이든 다 해보아야 했다. 그만큼 절실했던 상태였다.
마이너리그에서 괜찮은 성적을 올리고 빅리그 승격에 성공 그리고 완봉승을 거두는 사고까지 친다. 너클볼로 쌓은 통산 200승의 첫걸음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너클볼 투수들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적절한 지도를 받기 어렵다. 너클볼을 제대로 던져본 사람이 워낙 희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클볼 투수들이 모인 커뮤니티가 활성화 되었고, 서로 노하우를 전수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그들만의 문화도 생겼다.
기본적인 투구 정보는 물론이고 너클볼 투수에 대한 편견과 그로 인해 빚어지는 다양한 일화를 공유하며 서로 ‘멘탈관리’를 돕는 것이 색다른 점이다.
더 빠르게 던지고, 더 강하게 쳐야 인정받는 시대에 잣대가 하나만 있을 수 없다고 웅변하는 공, 막다른 벽에 다다랐을때 생존을 위해 시도하는 공이 바로 너클볼이다.
던지기 어렵고 받기도 쉽지 않은데다 코칭스태프마저 환영하지 않는 공, 주류가 아니어서 겪어야 했던 사연 하나하나가 너클볼처럼 예측불가능한 궤적의 삶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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