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박세리 ‘ 로레나 오초아 ‘
2007년 8월 5일 골프의 발상지인 스코틀랜드 세인트애드루스 올드코스 이제 막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 LPGA 투어 2007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의 우승컵은 로레나 오초아의 손에 들려 있었다.
생애 처음 안아보는 메이저 우승컵은 그녀에게 남다른 감회를 안겨준 듯 했다.
메이저 대회 24회 출전만에 처음 경험하는 짜릿함이었다. 멕시코의 골프영웅이 비로소 여자 골프의 1인자로 인정받는 순간이기도 했다.
부동산 업자인 아버지와 예술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4남매의 셋째로 1981년 11월 멕시코의 과달라하에서 태어난 오초아에게는 다섯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집 인근 골프장에 간 것이 골프와의 첫 만남이었다
골프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은 일곱 살 때이다.손오공 티비
하지만 그녀는 골프 외에도 다양한 스포츠에 재능을 보였다. 특히 테니스에서는 아홉 살 때 클럽 챔피언에 오르기까지 했고, 11세 때는 스포츠 육상선수, 12세 때는 해발 4,358 m 의 네바도 델 콜리마 산에 올랐다.
17세 때는 산악자전거, 트레킹, 수영, 카약, 밧줄타기 등으로 구성된 산악 종주 경기인 에코톤에 최연소 선수로 출전해 완주하기도 했다.손오공 TV
철인 3종 경기도 두 차례나 완주하였고, 틈나면 마라톤 경기에도 나섰다. 뿐만 아니라 1994 – 1998년까지 농구선수로 뛰면서 멕시코 할리스코 주 대표로 뽑혔는가 하면 1995-1997년에는 배구선수 등으로 활약했다. 한마디로 만능 스포츠 선수였다.
물론 오초아가 평생의 업으로 선택한 것은 골프였다.
2002년 2부 투어 상금왕 자격으로 2003년 LPGA 투어에 데뷔한 오초아는 그해 24개의 대회에 출전하여 두 차례의 준우승을 포함해 ‘ 톱 10 ‘ 8회로 단숨에 상금랭킹 9위에 오른 뒤2004년에는 2승을 차지하며 상금랭킹 3위로 뛰어올라 미래의 골프 여왕임을 입증했다.무료중계
2005년1승에 그쳐 상금 랭킹 4위로 물러선 오초아는 2005년 6승을 거두며 아니카 소렌스탐을 밀어내고 상금 랭킹 1위로 나선 뒤 2006년 4월 드디어 세계 랭킹에서도 소렌스탐을 끌어내리고 1위로 나서 새로운 강자임을 선포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오초아를 진정한 1인자로 평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챔피언의 제1자격요건인 메이저 타이틀리 없다는 이유였다. 그런 점에서 2007년 마지막 메이저였던 브리티시여자오픈 타이틀은 그 이전까지 수집했던 12개의 우승 트로피를 합친 것보다도 값지게 평가받을 수밖에 없었다.
오초아에게 소렌스탐은 큰 벽이기도 했다. 2006년 6승을 거두며 ‘올해의 선수’가 되었을 때나, 2007년 세계 랭킹 1위에 올랐을 때도 오초아 앞에는 늘 소랜스탐이 있었다.
부상만 없었다면 소랜스탐이 오초아에게 왕관을 뺏기지 않았을 것이란 인식이 너무도 강했다.
사실 11살 차이가 나는 소렌스탐과 오초아는 여러가지 면에서 닮은 점이 많다. 만능 스포츠 우먼 이라는 점부터 그랬다. 소렌스탐 역시 테니스 선수로 활약하며 스웨덴 주니어 랭킹 상위권에 들기도 했었으며, 축구와 스키 실력도 수준급이다.
골프선수로 주니어 때부터 이름을 날려 미국으로 유학 간 것도 똑같다.
소렌스탐과 오초아는 애리조나 대학 선후배 사이로 나란히 미국대학체육협회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뒤 2학년을 마치고 프로로 나섰다. 손오공티비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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